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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터널스, 창조와 운명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서사시

by 꾸준한 루디 2025. 6. 30.

1. 신들의 형상을 한 존재들, 그러나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영화 《이터널스》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속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지구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초월적 존재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우리가 알고 있던 마블 세계관에 새로운 철학적 깊이를 부여합니다. 단순한 히어로의 활약이 아닌, 수천 년 동안 인류와 함께하며 그들을 지켜본 존재들의 시선으로 풀어낸 이야기는 다른 히어로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결을 지닙니다.

 

이터널스는 셀레스티얼이라는 우주의 창조주로부터 임무를 부여받아 지구에 파견된 열 명의 불멸의 존재들입니다. 이들은 고대 문명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역사 속에 함께 존재해 왔지만,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디비언츠’라는 위협이 다시 등장하며 그들은 다시 하나로 모이게 되고, 자신들의 정체성과 사명에 대해 깊은 의문을 품게 됩니다.

 

등장인물들은 각기 다른 성격과 신념을 지니고 있으며, 그로 인해 갈등과 이해, 화해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전개됩니다. 특히 중심 인물인 서시와 이카리스는 사랑과 의무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을 통해, 마치 인간처럼 갈등하고 아파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터널스는 신적인 능력을 지닌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감정의 깊이와 윤리적 고민을 통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냅니다.

 

2. 문명의 발전과 도덕적 선택, 존재의 딜레마

이 영화는 단순한 선과 악의 대립 구조를 따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등장인물들이 마주하는 딜레마와 선택의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 속에서 관객에게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이터널스는 셀레스티얼의 계획에 따라 인류의 문명을 지켜보며 간섭하지 않는 원칙을 고수해 왔지만, 그러한 수동적인 태도가 진정한 정의인지에 대한 물음이 점차 강하게 제기됩니다.

 

특히 이카리스와 드루이그의 대립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드루이그는 인간이 스스로 폭력을 자행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여 능력을 사용하려 하지만, 이카리스는 창조주의 명령을 이유로 개입을 거부합니다. 그들의 대화와 충돌은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존재의 본질과 자유의지에 대한 깊은 철학적 논의로 이어집니다. 이처럼 이터널스는 초능력을 지닌 존재임에도, 오히려 인간의 윤리적 한계와 도덕적 책임에 대해 더 치열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또한, 이터널스는 셀레스티얼의 진정한 목적을 알게 되면서 충격과 혼란에 빠집니다. 자신들이 지켜온 것이 생명을 위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파괴를 위한 도구였다는 사실은 그들의 신념을 뿌리째 흔들어 놓습니다. 이 설정은 관객에게도 '과연 옳은 선택이란 무엇인가'라는 깊은 화두를 던지며, 기존의 마블 영화들이 주지 않았던 묵직한 여운을 남깁니다.

 

3. 다양성의 메시지와 새로운 세계관의 확장

《이터널스》는 서사뿐만 아니라, 표현 방식에서도 큰 도전을 감행한 작품입니다. 인종, 성별, 연령, 성적 지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배경을 지닌 캐릭터들이 조화를 이루며 등장하며, 이를 통해 진정한 다양성과 포용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이는 마블이 단순한 오락 콘텐츠를 넘어,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아내는 진화된 형태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맥카리라는 청각장애를 지닌 여성 히어로는 말로 하지 않아도 강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그녀의 스피드 액션은 단순한 능력의 과시가 아니라, 시각적 언어로 전달되는 독창적인 표현으로 다가옵니다. 또한, 파스토스는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초능력자도 사랑과 책임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처럼 비춰집니다. 이러한 설정은 관객에게 공감과 감동을 동시에 전하며, 캐릭터들의 입체감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더 나아가, 이 영화는 우주의 기원, 생명의 탄생, 창조주와 피조물 간의 관계에 대해 광범위한 철학적 상상을 펼쳐 보입니다. 그동안 MCU는 지구 중심의 이야기나 일부 외계 문명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터널스》는 우주의 근본적인 존재론까지 확장하며, 마블 세계관의 경계를 한층 넓히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셀레스티얼이라는 개념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스케일을 제시하면서, 다음 단계를 예고하는 발판이 되기도 합니다.

 

《이터널스》는 빠르고 경쾌한 액션보다는 서사 중심의 차분한 전개와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히어로 영화이면서 동시에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담아낸 이 영화는, 전통적인 마블 팬들에게는 낯설 수 있지만, 깊이 있는 이야기와 감각적인 연출로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합니다. 이터널스는 단지 우주를 구하는 영웅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고 새로운 가치를 스스로 선택하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이 보여준 용기와 갈등은 우리가 현실에서 겪는 삶의 고민과 맞닿아 있으며, 따라서 이 영화는 단순한 오락 이상의 가치를 지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