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멸의 몸, 불타는 영혼
신체적 불멸과 정신적 상처의 모순을 오롯이 짊어진 한 남자의 여정, <엑스맨 탄생: 울버린>(2009)은 마블 유니버스의 가장 복잡한 악역이자 영웅인 울버린의 기원을 파헤치는 작품입니다. 휴 잭맨의 강렬한 연기와 고통스러운 과거의 서사가 교차하는 이 영화는 슈퍼히어로 장르의 화려함 뒤에 가려진 인간적 비극을 집요하게 조명합니다. 전쟁의 상흔, 형제의 배신, 기억의 상실이라는 삼중 고통을 겪는 울버린의 이야기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존재의 의미를 묻는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제임스 하울릿, 일명 로건(휴 잭맨)은 어린 시절부터 클로(발톱) 능력을 지닌 돌연변이입니다. 형제 같은 존재인 빅터 크리드(리브 슈라이버)와 함께 수백 년 동안 전쟁터를 떠돌며 살아남기 위해 싸웠지만, 살육에 대한 빅터의 탐닉과 자신의 양심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결국 그는 폭력의 연쇄에서 벗어나 평범한 삶을 꿈꾸지만, 과거의 그림자는 그를 끝없이 추적합니다.
이 영화는 울버린의 외적 능력보다 내적 상처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의 아다만티움 골격은 육체적 무적을 상징하지만, 그 과정에서 겪는 고통은 그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습니다. 특히 아다만티움 주입 장면에서 로건이 내지르는 비명은 불멸이 축복이 아닌 저주일 수 있음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휴 잭맨의 연기는 이 순간 물리적 고통과 정신적 절망의 경계를 넘나들며 관객의 가슴을 후벼팝니다.
빅터 크리드(리브 슈라이버)는 이 작품의 또 다른 축입니다. 그는 로건과의 유대를 잔혹성으로 배반하며, 형제애와 증오의 이중성을 구현합니다. 남북 전쟁, 세계 대전, 베트남 전쟁을 함께 헤쳐온 두 사람의 관계는 시간을 초월한 유대이자 서로를 파괴하는 독이 됩니다. 빅터가 “우린 늑대야. 무리에서 떨어지면 죽는 법이지”라고 말하는 장면은 야생적 본능에 충실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돌연변이의 비정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리브 슈라이버의 연기는 빅터를 단순한 악당이 아닌, 유전적 본성에 사로잡힌 비극적 존재로 승화시킵니다. 그의 목소리 톤과 신체 언어는 야수성과 애틋한 형제애 사이를 오가는 복잡한 심리를 섬세하게 포착합니다. 특히 로건을 향해 “넌 늘 약했어”라고 말할 때의 빅터의 눈빛에는 질투와 동경이 공존합니다.
2. 웨폰 X 프로그램: 인간의 오만과 광기의 기록
스토리크스 장군(대니 휴스턴)이 주도하는 웨폰 X 프로그램은 이 영화의 핵심 악당이자 현실의 군사 산업 복합체를 풍자합니다. 돌연변이를 생체 무기로 개조하려는 그의 계획은 과학의 윤리적 한계를 넘어선 인간의 오만을 상징합니다. 실험실 장면에서 돌연변이들이 겪는 비인간적 고문은 나치의 강제 수용소를 연상시키며, 관객에게 생명윤리의 경각음을 울립니다.
특히 데드풀(라이언 레이놀즈)의 변형 과정은 이 영화의 가장 논란적인 부분입니다. 원작 코믹스의 유쾌한 반영웅에서 입이 봉합된 괴물로 변모한 그는 과학 실험이 창조할 수 있는 괴물성의 극단을 보여줍니다. 그의 최후의 대사 “난 입이 없어. 하지만 소리 지르고 싶다”는 모든 돌연변이가 겪는 정체성 억압을 대변합니다.
<엑스맨 탄생: 울버린>은 화려한 액션과 초능력 배틀에 집중한 나머지 서사적 깊이를 일부 희생했습니다. 울버린과 빅터의 추격전, 헬기 공격 장면, 다마스쿠스 스틸 플랜트의 결전 등에서의 CG는 당시 기술력의 한계를 드러내며, 일부 장면에서는 비현실적인 느낌을 줍니다. 특히 울버린의 클로 움직임이 과장되어 캐릭터의 리얼리티를 약화시킨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진정한 가치는 액션 사이에 스며드는 인물들의 감정선에 있습니다. 로건과 실버폭스(린 콜린스)의 애틋한 사랑, 존 와라(윌 아이 엠)의 충성심, 젊은 스콧 서머스의 등장은 마블 팬들에게 서비스적 요소로 작용하며, X-Men 세계관의 확장성을 암시합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로건은 기억을 잃습니다. 이는 원작 코믹스의 주요 설정을 반영하면서도, 영화적 해석을 더했습니다. 과거의 죄악과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한 그의 선택적 망각은 비겁한 도피가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그려집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헐벗은 채 광야를 달리는 모습은 야생으로의 회귀를 상징하며, 동시에 ‘울버린’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을 포착합니다.
하지만 이 결말은 아이러니를 담고 있습니다. 기억을 잃음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히어로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암시는, 과거와의 단절이 미래의 희망임을 강조합니다. 영화는 이를 통해 트라우마와의 화해 방식에 대한 메타포를 던집니다.
3. 슈퍼히어로 장르의 성찰적 시선
이 작품은 슈퍼히어로의 탄생을 영웅담이 아닌 비극으로 재해석합니다. 울버린의 불멸은 초인적 능력이 아니라 끝없는 고통의 원천입니다. 그의 클로는 적을 찢는 무기가 아닌, 자신을 가두는 감옥의 철창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힘은 책임이다”는 전형적 슈퍼히어로 모토를 뒤집어, “힘은 저주다”라는 독특한 명제를 제시합니다.
또한 영화는 돌연변이라는 소수자 집단의 딜레마를 반영합니다. 그들이 사회로부터 겪는 차별과 박해는 인종, 성적 취향, 장애 등 현실의 소수자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울버린이 “내가 몬스터라면, 네놈들은 뭐냐?”고 외치는 대사는 편견에 맞선 저항의 함성으로 해석됩니다.
영화의 음악은 울버린의 내면을 음향적으로 재현합니다. 전쟁 장면의 격정적인 오케스트라부터 회상 장면의 애절한 피아노 선율까지, OST는 극의 전개에 따라 감정의 리듬을 조절합니다. 특히 로건과 실버폭스의 이별 장면에서 흐르는 ‘Losing Everything’ 트랙은 사랑과 상실의 비극을 감동적으로 승화시킵니다.
색채 사용 또한 의미심장합니다. 과거 회상 장면의 차가운 청색 톤, 실험실의 병원적 백색, 마지막 광야 장면의 따뜻한 황금색은 각각 고통, 비인간성, 구원을 상징합니다. 울버린의 붉은 눈동자는 분노와 슬픔이 혼재된 그의 감정을 시각화합니다.
<엑스맨 탄생: 울버린>은 완벽한 영화는 아닙니다. 서사적 허점과 과도한 액션에 대한 비판을 피할 수 없지만, 휴 잭맨의 열연과 울버린이라는 캐릭터의 심층적 탐구는 이 작품을 마블 사가의 필수 장르로 자리매김하게 합니다. 그의 분노 어린 포효는 단순한 괴수의 울부짖음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기 위한 인간의 절규입니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묻습니다. “불멸이 당신에게 선물인가, 저주인가?”라고. 울버린이 끝내 답을 찾지 못한 채 영원한 방황을 계속하듯, 우리 역시 삶의 상처와 어떻게 화해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그의 발자국은 고통을 딛고 일어서는 모든 이들에게 남겨진 희망의 흔적입니다.
울버린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하지만 이 탄생의 순간만큼, 그의 상처와 분노가 우리의 마음을 울린 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엑스맨 탄생: 울버린>은 여전히 슈퍼히어로 장르의 거울로서, 인간 내면의 야수, 신성함이 교차하는 순간을 응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