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히어로 영화’를 넘은 전례 없는 스케일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10년을 집대성한 작품으로, 수많은 히어로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합니다. 이 영화는 기존 MCU 영화들과는 달리, 단순한 한 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서사가 아니라, 수십 명에 달하는 히어로들의 다양한 시점이 모여 거대한 이야기의 퍼즐을 완성해 나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 영화는, 마치 하나의 종합 예술 작품처럼 느껴질 정도로 탄탄한 연출과 치밀한 구성을 자랑합니다. 감독인 루소 형제는 이전까지의 개별 히어로 영화들을 하나의 축으로 연결하며, 이 거대한 세계관을 능숙하게 조율해 냅니다. 공간적으로는 지구, 타이탄, 노웨어, 바르미르 등 다양한 행성과 지역을 넘나들며 시선을 사로잡고, 시간적으로도 MCU 10년의 역사와 캐릭터 관계들이 긴밀히 얽혀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거대한 연극을 관람하는 듯한 몰입감을 줍니다.
특히 이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각각의 히어로들이 등장할 때 그들이 속한 세계관과 분위기에 맞는 연출을 유지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팀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특유의 유쾌함과 음악이 함께하고, 와칸다에서는 『블랙 팬서』의 문화적 배경이 잘 드러납니다. 이처럼 다양한 색채를 가진 캐릭터들이 한 영화에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톤의 균형을 잃지 않고 매끄럽게 통합된 점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2. 타노스, 단순한 악당이 아닌 중심 인물
『인피니티 워』에서 가장 독특한 부분 중 하나는 타노스를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하나의 주인공처럼 서사를 이끌어가는 중심 인물로 설정했다는 점입니다. 영화는 타노스의 시점에서 서사가 전개되는 순간이 많으며, 그의 목적과 감정, 고뇌에 대한 서사가 의외로 깊이 있게 묘사됩니다.
타노스는 인피니티 스톤을 모아 우주의 생명체 절반을 제거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자원이 한정된 우주에서 생존을 위한 균형을 이루기 위해 ‘절반을 없애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이 그 사명을 짊어진 존재라 믿고 있습니다. 이처럼 타노스는 광기에 사로잡힌 단순한 악당이라기보다는, 왜곡된 신념 속에서도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냉철한 철학자에 가깝습니다.
특히 가모라를 희생시켜 소울 스톤을 얻는 장면은 타노스의 복잡한 감정선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입니다. 그는 자신의 딸을 사랑하면서도, ‘우주를 위한 대의’라는 이유로 그녀를 희생합니다. 이는 단순히 무자비한 폭군의 행위라기보다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도 감수하겠다는 그의 굳은 의지를 드러냅니다. 이처럼 영화는 타노스의 인간적인 면모와 철학을 보여주면서, 그를 전형적인 악당이 아닌 ‘비극적인 존재’로 만들어줍니다.
그 결과, 관객은 그를 증오하면서도 동시에 연민하게 되며, 히어로 영화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타노스의 선택과 그것이 낳은 결과에 대해 오랜 시간 생각하게 만드는 힘은, 이 작품의 가장 강력한 내면적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상실과 침묵, 결코 끝나지 않은 이야기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마지막은 MCU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결말로 손꼽힙니다. 타노스가 결국 모든 인피니티 스톤을 모아 ‘핑거 스냅’을 실행하면서, 수많은 히어로와 인류가 먼지처럼 사라지는 장면은 극장에서 숨소리조차 멎게 만들 만큼 강력한 충격을 안겨줍니다. 피터 파커가 “가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하며 사라지는 장면은 특히나 많은 관객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이 영화는 ‘히어로가 반드시 이긴다’는 관습적인 서사를 깨뜨리며, 오히려 절망으로 마무리됩니다. 승리한 타노스는 한적한 들판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조용히 앉아 있습니다. 이 장면은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의 평온이라기보다는, 모든 것을 이뤘지만 공허한 존재의 고독을 상징하는 듯 보였습니다. 여기에는 아이러니와 불편함이 공존하며, 히어로 영화의 한계를 넘어선 깊은 여운이 남습니다.
더불어 『인피니티 워』는 단순히 한 편의 영화로 완결되는 구조가 아니라, 이후의 이야기를 기다리게 만드는 ‘연결된 결말’을 갖고 있습니다. 마치 연극의 1막이 끝나고, 조명이 꺼진 무대 위에 침묵이 감도는 듯한 느낌을 주며, 관객에게 다음 편을 향한 갈증과 기대를 안겨줍니다. 하지만 이러한 결말은 단지 다음 편을 위한 장치라기보다는, 상실과 무력감이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드는 중요한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묻습니다. 우리가 믿었던 정의, 팀워크, 희생은 과연 충분했는가? 그리고 이 잃어버린 세계를 되찾기 위해 어떤 희망이 필요한가? 이러한 질문은 이후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이어지지만, 『인피니티 워』는 그 자체로도 하나의 묵직한 질문이자, 절정의 서사로 남습니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단순한 히어로물의 한계를 넘어, 정체성과 철학, 상실과 희생을 진지하게 조명한 영화입니다. 마블 영화의 정점을 찍은 이 작품은 수많은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개성과 팀워크, 그리고 한 명의 적이 만들어내는 파괴적 서사를 통해 인간성과 영웅성에 대한 깊은 고민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영화는 단지 시각적 즐거움에 그치지 않고, 관객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 생각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끝이 끝이 아니었기에, 『인피니티 워』는 오늘날까지도 가장 강렬한 마블 영화로 기억될 자격이 충분합니다.